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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타의 역사적 미로 (요새, 기사단, 건축)

by 지식나라 2025. 7. 4.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요새 벽과 전망대, 성곽 위 대포

지중해의 작은 섬나라 몰타(Malta)의 수도 발레타(Valletta)는 유럽에서 가장 작은 수도 중 하나지만, 역사와 건축, 군사 전략이 녹아든 밀도 높은 도시입니다. 16세기 몰타 기사단이 세운 이 도시는 전쟁과 종교, 예술과 건축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요새 도시로서의 전략성, 기사단이 남긴 흔적, 그리고 르네상스와 바로크 건축이 뒤섞인 거리 풍경을 통해, 발레타의 독특한 유산을 살펴봅니다.

바다 위의 요새, 철저하게 계산된 도시 구조

발레타는 단순한 도시가 아닙니다. 전쟁을 대비해 건설된 요새 도시입니다. 1565년, 오스만 제국의 대공세인 ‘몰타 대공방전(Great Siege)’에서 승리한 몰타 기사단은 재차 공격에 대비해, 전략적 방어를 목적으로 발레타를 계획 도시로 건설합니다. 그 결과 도시는 모든 구조가 방어를 중심으로 설계되었습니다. 도시 전체는 바로크 양식의 격자형 구조로 이뤄졌으며, 바다에서 오는 바람이 잘 통하게 길이 정렬되어 있고, 각 골목은 요새처럼 높은 벽과 대포 구멍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도시 주변에는 성 엘모 요새(Fort St. Elmo), 성 제임스 요새 등 여러 방어 거점이 둘러싸고 있어, 적의 접근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도록 구축되었습니다. 특히 발레타는 고도차를 활용한 전략적 설계가 특징입니다. 언덕 위에 세워진 도시 구조 덕분에, 어떤 방향에서 적이 침입해도 조기 감지와 방어가 가능했으며, 해군 기지 역할도 겸하면서 지중해 해상력의 핵심으로 기능했습니다. 오늘날 이러한 요새 구조는 도시의 시각적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요소가 되었습니다. 돌로 쌓인 방어벽, 대포구, 좁고 긴 골목들은 역사와 전략이 살아 있는 건축 유산으로, 발레타를 걷는 이들에게 시간의 깊이를 느끼게 합니다.

몰타 기사단의 흔적, 도시의 정체성

발레타를 이해하려면 몰타 기사단(Order of St. John)의 존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11세기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이 군사-종교 기사단은 십자군 전쟁 이후 몰타로 본거지를 옮기며, 발레타를 중심으로 지중해 방어의 요충지로 삼았습니다. 이들의 흔적은 도시 곳곳에 깊게 새겨져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유산은 성 요한 공동대성당(St. John's Co-Cathedral)입니다. 겉보기에는 단순한 외관이지만 내부는 금장 장식, 카라바조의 명화, 정교한 마블 모자이크 등으로 장식되어 있어, 기사단의 부와 권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대성당은 기사단원들이 기도를 올리던 공간이자, 그들의 무덤이기도 하며, 몰타 종교 예술의 정수로 손꼽힙니다. 또한 기사단은 발레타에 기사관, 병원, 무기고 등을 건립하여 도시 전체를 하나의 요새이자 자급자족 가능한 본거지로 만들었습니다. 현재 몰타 전쟁박물관이나 기사단 병원(The Sacra Infermeria) 등은 당시의 기능을 잘 보존한 채 박물관이나 행사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어, 역사와 현대가 공존하는 독특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기사단은 단순한 군사 조직이 아니라, 종교적 신념과 유럽 귀족 문화를 공유한 집단이었습니다. 이들이 남긴 유산은 발레타를 단순한 도시가 아닌, 정체성과 상징이 뚜렷한 유럽 내 대표적 역사 도시로 만들었습니다.

르네상스와 바로크가 공존하는 건축 박물관

발레타는 유럽에서 르네상스 도시 계획이 실현된 첫 사례 중 하나로, 건축적으로도 매우 독특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기사단은 이 도시를 단지 방어용으로만 짓지 않고, 예술과 문화가 숨 쉬는 도시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 발레타는 방어성과 예술성이 공존하는 보기 드문 도시가 되었습니다. 거리 곳곳에는 바로크 양식의 건물, 르네상스 스타일의 궁전, 신고전주의 정원이 조화를 이루며, 그중에서도 총독 궁전(Grandmaster’s Palace)은 대표적인 예입니다. 고딕과 르네상스, 바로크가 층별로 나뉘어 표현되어 있으며, 과거에는 기사단 수장이, 지금은 대통령이 사용하는 건물로 변화해왔습니다. 또한 발레타의 전통적인 발코니 건축은 이 도시만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줍니다. 돌 건물 위로 색색의 닫힌 목재 발코니가 돌출되어 있는 구조는 지중해의 햇볕과 사생활 보호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독창적 형태로, 몰타 전역에서 볼 수 있지만, 발레타에 가장 많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길을 걷다 보면 연극, 클래식 음악, 미술 전시가 끊임없이 열리는 문화 중심지임을 느끼게 되며, 이는 도시가 역사 속 유산을 박제로 두지 않고 살아 있는 공간으로 되살렸다는 증거입니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야외 박물관 같으면서도, 동시에 오늘을 살아가는 공간인 발레타는 그 자체가 하나의 걸작입니다.

발레타는 요새로 시작해 문화 도시로 거듭난 지중해의 역사 도시입니다. 전쟁과 예술, 신념과 건축이 혼재된 이 도시는 작은 면적 안에 수백 년의 유럽 역사를 응축시킨 도시입니다. 중세 기사단의 흔적을 따라 걷고, 바다와 도시가 만나는 풍경을 바라보며,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곳. 그것이 바로 발레타입니다. 유럽 속의 작은 거인, 발레타에서 진짜 시간 여행을 떠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