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의 예술적 심장이라 불리는 발파라이소(Valparaíso)는 남미에서도 가장 독창적인 도시 중 하나입니다. 태평양과 맞닿은 항구도시이자, 형형색색의 벽화, 미로 같은 언덕길, 그리고 문학과 음악이 흐르는 예술의 도시로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발파라이소의 거리예술(벽화), 역사적 항구의 매력, 그리고 지역 특유의 언덕마을 문화를 중심으로 이 도시의 다층적인 매력을 탐방해봅니다.
거리마다 작품이 되는 도시, 벽화 예술
발파라이소의 골목을 걷다 보면, 벽 하나하나가 전시장이자 캔버스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됩니다. 이 도시는 남미 거리예술의 수도라 불릴 만큼 수많은 벽화(Mural)와 그래피티가 도심 전역에 걸쳐 분포되어 있으며, 그 수준과 다양성은 세계적입니다. 특히 세로 알레그레(Cerro Alegre)와 세로 콘셉시온(Cerro Concepción) 언덕 지역은 벽화 거리의 중심지로, 이 지역을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마치 야외 미술관을 걷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벽화의 주제는 정치적 메시지부터 사랑, 자연, 문화 풍자 등 다양하며, 많은 작품들이 현지 예술가들의 손에 의해 꾸준히 변화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벽화를 불법 낙서가 아닌 도시문화의 일부로 보호하고 있으며, 몇몇 작품은 관광지도에까지 표시되어 여행자들의 필수 코스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일부 호스텔과 카페는 외벽에 대형 벽화를 직접 의뢰하기도 하고, 지역 주민들은 집 앞의 벽화를 자랑스러워하는 분위기입니다. 이러한 벽화 문화는 단순한 시각적 즐거움을 넘어서, 발파라이소의 개방성과 예술 중심 문화를 반영합니다. 이 도시에선 예술이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공간’ 그 자체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칠레의 관문, 역사와 삶이 깃든 항구
발파라이소는 19세기 남미에서 가장 중요한 무역항 중 하나였습니다. 파나마 운하가 개통되기 전,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항로의 중간지점이었던 이곳은 선박, 상인, 이민자들이 오가는 활기찬 도시였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지금도 항구 곳곳에 녹아 있습니다. 도시 중심의 무엘레 프랏(Muelle Prat)은 현재도 어선과 화물선이 오가는 실질적인 항구이며, 주변에는 해산물 식당, 기념품 시장, 항구 투어 보트가 자리잡고 있어 여행자들에게 인기입니다. 보트를 타면 항구 전경은 물론, 바다사자, 갈매기 등 해양생물도 관찰할 수 있어 색다른 경험이 됩니다. 또한 해양 역사 박물관(Museo Marítimo Nacional)은 스페인 식민지 시기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칠레 해군 역사와 관련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어 역사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유익한 장소입니다. 발파라이소의 항구는 단순한 물류의 공간이 아니라, 이 도시 정체성의 핵심입니다. 바다와 함께 성장해온 이 도시는, 오늘날에도 해양 문화를 기반으로 살아 숨 쉬고 있으며,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미로 같은 언덕마을, 일상 속 예술
발파라이소는 평지가 거의 없는 도시입니다. 40개가 넘는 언덕(Cerro)이 도시를 구성하고 있으며, 각 언덕은 독특한 커뮤니티, 예술적 특성, 생활 방식으로 구분됩니다. 언덕 위로는 미로처럼 얽힌 계단과 좁은 골목, 레트로풍의 케이블카(Ascensor)가 이어져 있어 도시 탐방 그 자체가 하나의 모험이 됩니다. 이 중 가장 유명한 아센소르 아르투로(Ascensor Artillería)는 1893년에 만들어진 역사적인 케이블카로, 지금도 탑승이 가능하며 언덕 정상에서는 바다와 도시 전경이 한눈에 펼쳐집니다. 주민들은 이 언덕을 중심으로 작은 카페, 갤러리, 공방 등을 운영하며, 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에 거주하면서 도시의 감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언덕마을에서는 창의적 공간 활용이 두드러지는데, 낡은 창고를 개조한 갤러리, 계단을 따라 조성된 벽화, 옥상 정원 등은 이 도시가 예술을 통해 어떻게 도시 재생을 이루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관광객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도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가는 이 도시의 언덕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살아 있는 문화유산입니다. 각 언덕마다 고유의 개성과 풍경이 다르기 때문에, 천천히 걸으며 발견하는 재미가 있는 곳입니다.
발파라이소는 단순한 항구도시가 아니라, 예술과 삶이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문화 도시입니다. 거리마다 숨겨진 예술작품, 파란 바다와 항구의 역사, 미로 같은 언덕 위 일상까지—이 도시의 모든 요소는 여행자에게 영감을 선사합니다. 칠레를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산티아고에서 단 하루만이라도 발파라이소에 머물러 보세요. 그 하루가 오랫동안 기억될 특별한 순간이 될 것입니다.